농심이 미국 정부를 법정에 세운 이유

지난주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장 하나가 조용히 접수됐습니다. 원고는 농심 미국법인, 피고는 미국 정부와 관세국경보호청(CBP). 요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동안 낸 관세,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주십시오." 한국 식품업계 첫 사례입니다. 라면 회사가 왜 갑자기 소송을 걸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농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379억 달러가 걸린 환급 레이스
출발점은 2026년 2월 20일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6대 3으로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2025년 4월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밀어붙인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가 그날 무너졌습니다.
이후는 돈 돌려받기 경쟁이었습니다. CBP는 ACE 포털에 CAPE라는 일괄 환급 신청 시스템을 열었고, 10월 23일 기준 접수 금액이 약 1,379억 달러, 이자까지 확정해 재무부에 지급을 요청한 금액이 약 1,277억 달러에 이릅니다. 숫자만 보면 잔치가 거의 끝난 듯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80일'과 '2월 19일', 두 개의 벽
CAPE는 단계별로 열렸습니다. 1단계(4월 20일)와 2단계(6월 29일)는 아직 세액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확정 후 80일이 지나지 않은 건이 대상입니다. 오래된 통관 건은 자동 탈락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10월 6일 3단계가 열렸는데, 조건이 붙습니다. CIT에 직접 소송을 제기해 재정산 명령을 받은 수입자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소송을 안 했으면 문이 닫힙니다. 개별 소송이 4,000건을 넘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송이 부담스러운 기업을 위해 10월 8일 집단소송(Freestyle World v. CBP)이 인가됐습니다. 대상은 2025년 2월 1일부터 2026년 2월 19일까지 해당 관세를 납부한 모든 수입자, 다만 별도 소송을 낸 기업은 제외입니다. 문제는 인가가 곧 환급 명령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관세는 2월 23일까지 걷혔는데 집단 범위는 2월 19일에서 끊긴다는 점입니다. 나흘치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농심이 굳이 개별 소송을 택한 배경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우리 기업은?
핵심은 하나입니다. 그 관세를 누가 냈는가. 환급 청구권은 미국 측 수입자(Importer of Record)에게 있습니다.
- FOB·EXW로 팔고 미국 바이어가 통관했다면 우리 회사가 직접 받을 돈은 없습니다. 대신 바이어가 받을 환급금을 단가 협상 카드로 쓸 여지는 생깁니다.
- 미국 판매법인이 직접 수입했다면 청구 대상입니다. 현지 공장이 있어도 완제품이나 원부자재를 들여와 관세를 냈다면 검토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실무 점검은 네 단계입니다. ① 2025년 2월 이후 미국 통관 건의 IOR이 누구인지 확인 ② 납부 관세에서 IEEPA 분을 분리(이번 환급은 IEEPA 관세 대상입니다) ③ ACE 계정과 ACH 환급 계좌 등록 여부 확인 ④ 세액 확정 후 80일이 지났는지 확인. 넷 중 하나라도 막히면 개별 소송 검토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K푸드 업계만 봐도 그림이 제각각입니다. 삼양식품은 미국 판매법인이 본사 제품을 매입해 파는 구조이고, CJ제일제당은 비비고 중심 현지 생산, 대상은 2022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김치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같은 업종인데 환급 조건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 업계는 어떻다"가 아니라 "우리 회사 통관 서류는 어떻다"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창고 구석에 쌓아둔 통관 서류가 갑자기 자산이 되는 시대입니다. 오늘 서류철 한번 열어보시죠.
참고 자료
- 농심, 美 관세 환급 소송…K푸드 수출기업 영향 주목 (전자신문)
- "위법 관세 돌려달라"…농심 美법인, 트럼프 정부에 소송 (뉴스1)
- IEEPA Tariff Refunds Update: Phase 3 and the Class Action (J. Chang Law)
- CBP Launches CAPE for IEEPA Duty Refunds (GHY International)
- Supreme Court tariff ruling and CIT order reshape the IEEPA refund landscape (Baker Tilly)
작성자 알파매치
Tags
흥미롭게 읽으셨나요? 다른 글도 읽어 보세요!
EU, 중국, 하이
EU·중국 하이브리드 '반토막' 합의, 한국차는 웃어도 될까요?
지난 9일 베이징에서 이틀간 이어진 협상이 끝났습니다. EU와 중국이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는 소식입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
관세청, 통관, 미
미국 CBP가 서울로 왔습니다 — 오늘 개막한 '코리아 커스텀즈 위크 2026'
수출 1조 달러. 숫자만 보면 축포를 터뜨릴 만합니다. 10월 수출은 1,152억 7,6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93.7% 늘었고, 1~1...
수출가이드, 무역통
글로벌 무역 데이터 200% 활용법
K-STAT으로 수출 기회 발굴하기무역 데이터 200% 활용법 한국 제조기업이 해외 시장을 개척할 때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